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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시간 위에 머무르다 (영주, 고찰, 가을풍경)

by hapt2732 2025. 6. 30.

영주-부석사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 그곳에서 마주한 가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순간, 우리는 어쩌면 오래된 절 하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절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쌓인 고요와 사람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드는 이 고찰은, 특히 가을에 가장 빛난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수록 자연과 시간의 결이 마음에 스며드는 부석사. 이번 여행은 그 고요한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영주: 전통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

경북 영주는 산과 강, 그리고 깊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다. 그 중심에는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를 향해 가는 길은 도시의 소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산 능선을 타고 오를수록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영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한 채, 걷는 이의 발걸음을 조용히 이끈다. 차분한 기운 속에서 눈에 띄는 건 바로 전통과 자연의 조화다. 소백산 자락에 안긴 부석사 주변은 단풍이 수놓은 산길, 들꽃이 피어난 언덕,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이어진다. 이 길 위에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색의 시간이다. 영주에는 부석사 외에도 여행자가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선비촌이 있다. 선비들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고택과 정자가 어우러져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명소인 무섬마을은 낙동강 물줄기 따라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하며, 돌다리를 건너며 고택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이렇듯 영주는 단순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전통과 자연, 사색의 시간이 어우러지는 정신적 쉼표 같은 도시다.

고찰: 무량수전이 품은 천년의 울림

부석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경사진 돌계단이다. 돌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무량수전이 눈앞에 나타난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단정한 곡선과 적절한 비례미가 인상적이다. 기둥마다 세월의 결이 묻어나고, 건물 전체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나무 바닥에 닿는 발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건축이 공간을 담고, 그 공간이 시간을 품는다면, 무량수전은 천년의 시간을 온전히 머금은 장소라 할 수 있다. 특히 부석사는 ‘부석’이라는 떠 있는 돌에 얽힌 전설이 유명하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지을 때, 용이 나타나 도와주었고 바위가 허공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무량수전 앞 부석 바위는 절벽 위에 위치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전설이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한 이 절은 불국사, 해인사와는 또 다른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고찰로, 외형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깊이를 전해준다.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 소리가 기왓장 위에서 은은히 퍼지며, 방문객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가을풍경: 고요한 빛이 머무는 계절

가을의 부석사는 색으로 말한다. 붉고 노란 단풍이 절집을 감싸고,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릴 때마다 경내는 고요한 음악처럼 변한다. 특히 무량수전 앞뜰은 가장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장소이자,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자연의 색이 마음의 색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붉은 단풍 아래에서,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내려앉는 햇살은 감정을 덜어내고, 빈 마음을 채워준다. 부석사 가을 풍경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해가 낮게 기울 무렵을 추천한다. 이 시간대에는 황금빛 햇살이 단풍잎을 비추며 절 전체가 따스한 빛에 물든다. 특히 무량수전 뒤편 산책길을 걸으면 고요한 숲길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냥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가끔은 사찰의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데, 그 울림이 단풍의 정취와 겹쳐져 가을을 더욱 짙게 만든다.

결론: 그 계절, 그 길, 그 마음

부석사 여행은 단순히 사찰만 보는 일정에 그치지 않는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산책길, 전통기와로 이어진 담장길,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온 나무들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처럼 어우러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영주의 정취가 서서히 스며들고, 사색에 잠기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의상대사의 설화가 깃든 부석 바위에 잠시 손을 얹고 있노라면, 현재의 고민보다 오히려 먼 과거의 누군가와 마음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명상이나 조용한 독서를 즐기는데, 이는 부석사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석사를 둘러본 후에는 영주 시내로 내려와 지역 특색을 살린 식도락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사찰 인근에는 산채비빔밥, 도토리묵, 청국장 등을 내는 작은 식당들이 많아 건강한 한 끼를 채울 수 있다. 또한 영주는 사과의 고장답게 가을이면 직거래 장터나 농장 체험도 가능하다. 사찰에서 받은 마음의 위로에 이어 지역에서 주는 따뜻한 환대를 경험하면 여행의 감동은 배가된다. 단풍이 가득한 소백산 자락을 따라 내려오며 바라보는 가을 영주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하나의 서정으로 남는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에 설 때, 또 다른 나와 마주할 수 있기를. 부석사의 시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